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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에 의사가 필요한가 ?
퍼온 글|2021-06-09 조회수|587


 


어린 시절

장마철이 되면 어릴 때 발가벗고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지금은 비가 산성이라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석지붕과 물받이 밑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맞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어려서 머리에 부스럼이 많이 나 있어서 먹는 것에 제한이 많았다. 증조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한 탓인지 집안의 분위기는 한방의 색깔이 묻어 있어서 피부가 좋지 않는 나에게 닭과 돼지 등 육고기는 금물이었다.

식구들이 닭을 먹고 있을 때마다 손에는 손가락과자를 끼어주고 그것을 먹게 했는데 그 과자라는 것이 튀김과자여서 기름이 많았다. 그 과자는 정식제과점의 과자도 아니고 무명의 불량과자였고 그 기름이 좋은 기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아서 실제로는 닭고기를 먹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후 초등학교 시절에 피부는 그런대로 깨끗해졌다.

중학교시절

중학교를 광주로 이사를 오면서 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 근처는 전남방직, 일신방직이라는 큰 회사가 있었는데 하천은 완전히 오염되어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하였다.

1학년 겨울방학 무렵에 김치파동이 일어났다. 그때 김치는 금치로 고춧가루는 금가루가 되어 반에서 김치를 싸오는 친구는 부잣집을 제외하고는 드물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치를 먹을 수가 없었고 대신에 아부라기라고 하는 오뎅 종류와 감자 반찬이 단골이 되었다.

집에서는 마가린이라는 것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밥에 장을 넣고 마가린을 비벼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 문제는 김치 없이 먹었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대책이 없었다. 그때는 트랜스지방이라는 단어조차도 모르는 시절이라 마가린을 열심히 먹을 수밖에...

초등학교시절에 라면땅, 손오공, 뽀빠이가 나와서 우리가 먹는 군것질에 일대혁명이 일어났고 내가 중학시절까지도 이어져 꿀짱구와 더불어 내 군것질을 거의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당 시는 단 것이 부족한 시절이라 불량식품의 개념보다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준이었으니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중 2 여름에 축구를 하다가 왼손 팔꿈치를 삐었는데 왼손 팔꿈치 안쪽으로 피부에 오돌오돌 무엇인가 일어났다. 며칠 있다가 없어졌는데 다시 나서 가려워 긁었더니 부위가 넓어졌다.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감쪽같이 나았는데 다시 재발하는 것이었다.

몇 번 반복하자 어머니는 광주에서 제일 유명한 피부과를 데려갔다. 그 할아버지 의사는 내 피부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뿌리를 뽑아야한다고 하면서 주사를 주고 약을 주었다. 그 할아버지 의사는 내가 의사가 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피부병을 뿌리 뽑자는 의사는 사기꾼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 후 감쪽같이 없어졌는데 다시 재발하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금남로의 유명한 약국에서 약을 대량으로 가져왔다. 그 당시 의약분업이 없던 시절이라 약을 살 수 있었고, 그 약을 먹자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가 통통해지자 너무 좋아하셨다. 비만이 문제가 아니던 시절이라 배나온 사장을 부럽게 여기던 때였다.

피부는 좋아졌는데 목에는 삼겹살이 되어 비둔하게 보였다. 약을 그만 먹었는데 이미 늦어서 스테로이드 합병증으로 살이 찐 것이었다. 면역성이 떨어져 애들에게 주로 걸리는 수두가 생겨 얼굴이 완전히 얽어서 집밖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성모병원 피부과에 갔더니 그 선생님 말씀이 아토피라고 일러주고 평생에 가지고 사는 것이라는 말을 처음 해 주었다. 수두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지만 약물 부작용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병명을 알아서 너무 좋았다.

나는 피부병을 앓은 지 3년이 지난 다음에야 병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두와 비만이 스테로이드 호르몬 약물의 합병증이었다는 사실은 의과대학에 들어 와서 약물학을 배운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의과대학 시절

아토피에 대하여 책을 찾아보니 이런저런 말은 많은데 결론은 사춘기에 생긴 아토피는 성인 아토피로서 없어지지 않으니 평생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심할 때만 적당히 처방을 받아서 지내라는 것이 요지이다. 그 후 책을 덮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토피가 있으면 대개 어린 시절의 일이라 거의 부모가 치료 권한을 가지게 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 해주고 싶고 자식의 고통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게 된다.

호르몬제제로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길가에 파는 좋은 약이라고 발라서 화상을 입어 껍데기가 홀랑 벗어진 적도 있었고, 나병환자들이 먹는 약이 피부에 좋다고 먹는 약을 가져와서 먹어 본 적도 있고, 유명한 한의사에게 제조를 했다고 한약을 지어 와서 먹고 합병증이 생겨 위가 망가져 고생한 적도 있었다.

대학시절에 와서는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내가 결정을 해야 했다. 책에도 답이 없고 어머니의 치료도 답이 아니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대학시절에 동의학연구회에 가입하여 한의학 연구랍시고 초보적인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졸업 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나는 내 몸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었다. 의학이라는 학문을 기본적으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생명이 어디에 있는 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직도 의학은 환원주의라는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체적인 눈을 잃어버렸다는 카프라의 지적은 내 마음을 찔렀다. 어떤 책에서 보았던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라는 말도 내 머리에 빙빙 돌았다.

열린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과 토론하고 건강을 추구하고 건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먹고 마시고 같이 움직이면서 생각이 하나씩 정리되고 생활도 하나씩 바뀌어 갔다.

아토피의 3대 거짓말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토피에 3대 거짓말이 있었다.

1. 씻지 마라.
2. 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먹지 마라.
3. 우유, 계란 먹지 마라.

나는 이것으로 너무 많은 피해를 보았다. 첫째 나는 씻기를 싫어해서 씻지 마라는 것은 사실 너무 좋았다. 씻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의사가 아닌 다른 분에게 들었다. 하루에 한 번 샤워하는 것을 습관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요즈음에는 하루에 두 번 꼬박꼬박 샤워를 한다. 피부는 그 만큼 좋아진다. 낮에 한 번 더 씻고 싶은데 방법을 연구 중이다.

2.3번은 둘 다 먹는 문제라서 둘로 나누기는 뭐하지만 그 당시에는 서로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은 다 잘 먹는다. 특히 우유는 제대로만 먹었으면 키가 5cm는 더 컸을 텐데의 아쉬움이 남는다. 한참 자랄 때 단백질이 부족하면 키가 크질 않는다. 특히 돼지고기는 피부에 좋다.

아토피는 나중에 좋아질 수 있지만 키는 시간이 지나면 크지 않는다. 먹는 것을 너무 가리면 빈대를 잡다가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음식 자체의 문제인지 음식에 포함된 음식이 아닌 농약, 제초제, 환경호르몬이 문제인지 구분을 해야 한다. 나는 요즈음 유기농이라면 다 먹는다. 진짜 유기농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문제이지 믿을만한 것이라면 먹는 것의 금기는 완전히 없어졌다.

아토피의 3가지 소원

한참 심할 때 3가지 소원이 있었다.

1.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계속 잤으면...

자다가 깨어나서 박박 긁어서 자고 나도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서 제발 깨지 않고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공중목욕탕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으면...

온 몸이 너무 심해서 목욕탕에 가면 문둥이 쳐다보듯이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마음이 졸아들어서 좋아지면 목욕탕에 가야지..

3. 잘 드는 칼이 있으면 피부를 한 포 벗겨냈으면..

심한 피부를 벗겨 내버리면 새로 피부가 생겨 좋아지지 않을까...

지금은 이 세 가지 소원과 상관없이 살아갈 정도로 조절이 되었다. 하지만 약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피부과 의사를 만나서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하는 만큼 좋아지는 피부

아토피는 원인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들이면 그만큼 몸은 좋아진다. 매매 씹으면 그만큼 피부는 달라진다. 여러 번 샤워하면 또 달라진다. 물을 바꾸면 또 달라진다. 유기농을 먹으면 많이 달라진다. 장이 비워지면 좋아진다. 유도를 하여 땀을 많이 흘리면 너무너무 좋아진다. 등등

한 가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때그때 덕을 보았다. 지금도 완벽하게 없어지지 않았지만 얼굴이나 보이는 부분은 많이 좋아져서 사람 행세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다.

정신적인 부분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아토피는 장기적인 질병이다 보니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귀가 엷어져서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진다. 똑같은 상황에서 주변의 사람이 내 피부를 보고 좋아졌다하면 기분이 좋고 나빠졌다하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나는 이 말이 나를 제일 사로잡았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내 심령은 병을 이길 수 있다. 아토피는 내가 끌고 다녀야지 끌려 다니면 끝이 없다. 내일 죽더라도 죽는 날까지 내가 아토피를 끌고 다녀야지 주변 사람의 말이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기적인 변화 즉 일 년 정도를 두고 피부의 변화를 보고 좋아졌다 나빠졌다 평가를 해야지 매일의 변화에 신경을 쓰다보면 피곤해서 살 수가 없다. 조금씩 조금씩 좋아져서 어떻게 좋아지는지 모르게 좋아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갑자기 좋아지는 방법은 의심을 해보아야한다.

아토피에 의사가 필요한가?

아토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아토피를 의사에게 맡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제목을 달았냐고 나를 무책임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토피로 오래 동안 고생을 했다. 의사로서 피부과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아토피 관계된 책을 읽었고 의학적인 부분에서는 알만큼은 안다. 그래서 피부과 의사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대화는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겪은 바로는 아토피에는 처방해주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화해 주는 친구와 같은 의사가 필요하다. 현재 의료체제에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는 의사가 있으면 자살할 생각을 방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